헬스장을 하루 빠진 뒤로
영영 안 가게 되는 이유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한 번 놓치는 순간, 뇌는 실패를 직면하느니 시도 전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 3회 헬스장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한 번 빠졌습니다. 그리고 반년을 안 갔습니다.
오랫동안 이걸 "나는 게으르다"로 분류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회사 일은 마감을 놓친 적이 없고,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했습니다. 유독 나를 위한 일만 한 번 어긋나면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같은 패턴이 도처에 있었습니다. 다이어트 중에 점심 한 끼를 어기면 그날 저녁은 폭식이 됐습니다. 미라클모닝을 하다 하루 늦잠을 자면 그 뒤로 알람을 아예 껐습니다. 매번 무너진 지점은 목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 번 놓친 다음이었습니다.
놓침이 아니라, 놓친 다음이 문제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all-or-nothing 사고라고 부릅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 한 번 어긋나면 그 어긋남을 마주하는 게 너무 아파서, 뇌가 조용히 시도 전체를 폐기해 버리는 겁니다. 포기하는 편이 직면하는 편보다 덜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게 왜 잔인하냐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고통이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실패도 없습니다. 뭔가 해보려 한 사람만 절반을 해내고도 자비 없는 패배감을 받습니다. 시도한 사람이 시도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아픈 구조입니다. 이건 정당한 처우가 아닙니다.
내가 쓰던 앱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이 관점으로 다시 보니, 제가 쓰던 할 일 앱들이 전부 정확히 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습니다.
연속 기록이 끊겼다는 알림. 이번 주 달성률 43%. 캘린더에 남은 빨간 미완료 표시. 이 장치들은 전부 내가 얼마나 못 했는지를 재는 계기판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가 가장 떠나기 쉬운 순간에 가장 크게 울립니다. 일주일 만에 앱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빨간 칸이라면, 대부분은 앱을 지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계속하게 만들려고 만든 도구가, 떠나게 만드는 결정적 장치였던 셈입니다.
우리는 엘리트 운동선수가 아니다
자기계발 방법론 대부분은 암묵적으로 한 종류의 사람을 가정합니다. 목표에 온 자원을 투입할 수 있고, 규율이 곧 정체성인 사람. SMART 기법으로 목표를 쪼개고 매일 측정하면 움직이는 사람.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직업이 있고, 월세가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것에 팔려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더 세게 몰아붙이는 코치가 아닙니다. 돌아올 자리를 지켜주는 코치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적용한 세 가지
- 놓친 날은 빈칸으로 남긴다. 빨간 표시가 뜨는 기록은 전부 없앴습니다. 일주일 만에 돌아와도 움찔할 게 없어야 합니다.
- 돌아온 날은 감사가 아니라 축하 대상이다. 며칠 비웠는지 세지 않고, 왜 안 왔는지 복기하지 않습니다. 돌아온 것 자체가 그날의 성취입니다.
- 하루의 끝에 한 일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 좀 했다"가 아니라 실제로 한 그 일을 말합니다. 두루뭉술한 칭찬은 남지 않고, 구체적인 것만 남습니다.
이건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뇌에게 떠날 명분을 쥐여주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기준은 그대로 두되, 놓친 날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으면 됩니다.
말을 바꾸면 낙인이 남는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위로는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됩니다. 그 문장은 이미 실패라고 부른 뒤에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낙인은 그대로 남습니다.
정확한 말은 이쪽입니다. 놓치는 날은 원래 있다. 중요한 건 돌아오는 것이다. 앞의 문장은 실패를 인정하고 달래지만, 뒤의 문장은 그게 애초에 실패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 글자 차이 같지만, 다음 날 아침에 완전히 다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 생각으로 앱을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캘린더에 미달성을 표현하는 색이 없고, 연속 기록이 없고, 며칠 비우고 돌아온 날에는 공백을 묻는 대신 돌아온 것을 먼저 축하합니다. 가입 없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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